
‘플라멩코 여정’은 최근 미국에서 전자책으로 발간된 책 제목이다. 고향인 마산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카페 소사이어티’의 작가 김준형씨가 영어로 플라멩코와 판소리의 만남을 자전적 소설형식으로 쓴 열정의 플라멩코와 우리나라 남도의 신명나는 설장고와의 영혼적인 만남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유럽 서남단의 이베리아반도,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집시의 한, 그 떨리는 소리, 아~이! 아~이! 아~이……. 깊은 노래가 우리 판소리와 너무 닮아서일까. 플라멩코를 추는 여성 댄서와 한국인 남성 여행객이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만나 서로 상대의 문화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소설에는 주인공인 한국 남성이 플라멩코의 마력에 사로잡혀 스페인 그라나다와 세비야 등을 여행하면서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번역한 곡에 맞춰 댄서가 플라멩코를 추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플라멩코로 춰달라는 부탁까지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 생각 좀 해보자. 집시의 한을 관능적인 춤으로 발산하는 것이 플라멩코라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아픔을 노래한 넋두리가 흑인영가일 테고 같은 나라 백성이면서도 반상적서 계급으로 나뉘어 종노릇 해온 민초들의 슬픔을 승화시킨 것이 판소리 아니었던가.
또 좀 생각해 보면 어디 그뿐 일까. 몇 년 전 스페인의 사회주의 정부 때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에선 한바탕 미디아 소동이 났었다. 공립학교 성교육 교과과정에 13세 이상의 소년 소녀들을 위한 자위행위 워크숍을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즐거운 쾌감은 네 손 안에 있다’라고 불렸다. 항의가 빗발치자 이 지방 당국은 미성년 아동들의 임신과 더 큰 불행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의 일환으로 ‘자위행위 수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안달루시아 지방정부도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친대중당 단체에서 법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폐기시키려 했으나 이 지방검찰청에서 항의를 접수조차 해주지 않아 실패했다. 흥미롭게도 이 법적 도전은 ‘깨끗한 손’이라 명명되었었다. 이에 대해 페루의 2010년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미국의 지성 월간지 하퍼스 매거진 실린 ‘성애예술’이란 에세이에서 아래와 같이 술회하고 있다.
“옛날 가톨릭 학교 다닐 때 성기를 잘못 만지면 눈멀고 폐병 걸리며 미치게 된다는 신부님들 말씀에 잔뜩 겁먹었었던 내 어린 시절로부터 60여 년이 지나 학교에서 용두질 수업시간이 생기다니 이것이 진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좋은 의도와 원치 않는 임신 사례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섹스에 관한 미신과 거짓말 그리고 잘못된 편견으로부터 어린애들을 해방시켜주는 대신 이런 마스터베이션 워크숍은 그러지 않아도 성행위가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현대사회에서 그 더욱 하찮은 짓으로 치부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워준 쾌락의 원천을 미래세대로부터 박탈해 성행위가 아무런 신비감도 정열도 없이 단순한 신체적 운동에 지나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자, 이쯤해서 우리 국경과 이념, 종교와 신앙, 인종과 성정체성 등 모든 인위적인 경계를 허물고 전 인간가족을 아우르는 플라멩코 여정에 올라 보자. 최근 미대륙횡단 마라톤 일기를 미주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페이지에 연재해온 강명구 씨는 그의 칼럼 ‘백악관에서 통일을 생각함’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고 있다.
“통일의 경비는 대륙횡단 마라톤을 하는데 지불한 경비보다 더 엄청난 경비가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휴전선이 무대의 막이 걷히듯 열리는 순간 우리의 새로운 역사의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 한반도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이라는 공연이 펼쳐지는 커다란 극장이 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각보를 만들었다. 통일은 비슷한 사람끼리 뭉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공들여 마르고 꿰매어 무지갯빛 조각보를 만드는 것이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