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꽂힌 말 한마디 품고 계신가요?

텃밭에 가을 배추가 여물고 있다. 사진; 최영미

 새벽 수영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돌아와 반려견과 아침 냄새 맡기 산책을 짧게 한 후 밥을 먹이고 엄마집으로 갔습니다. 엄마의 아침을 챙기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다행히 엄마의 주보호자인 언니는 자고 있습니다. 내 당번 날에 언니가 엄마를 챙기고 있으면 여간 미안한 게 아닙니다.

 

 간밤에 뭔가에 이끌려 집을 나가지 않도록 작은 걸쇠가 걸린 엄마의 방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엽니다. 가끔은 발을 딛기 힘든 상황이 있으니까 불을 켜고 바닥을 먼저 살핍니다. 다행히 정돈된 상태 그대로인 걸 보니 간밤에 통잠을 잤을 확률이 높습니다. 바닥을 따라 사방을  훑은 시선은 침대 난간을 피해 끄트머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엄마와 마주칩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듯한 엄마의 막연한 표정은 이내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를 본 듯한 아기의 울음 섞인 미소로 번집니다.      


 엄마가 혼자 현관문을 열고 나가 몇 번 찾아 헤맸는데 그새 문밖의 세상을 잊은 것처럼 방문이 백만 년 만에 열린 듯 엄마의 첫마디가 네가 나를 보러 왔구나입니다. 늘 있는 방문인데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설렘과 불안이 섞여있는 말투입니다.     


 목욕을 마치고 입을 순서대로 옷을 하나씩 내어놓습니다. 엄마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시간인데요. 상의 속옷부터 다음은 상의 겉옷 그리고 하의로. 옷을 무릎 위에 놓으면 이리저리 뒤척이며 앞뒤를 구별하고 위아래를 확인하고 안과 겉을 파악한 후 머리에 끼우고 오른팔을 넣고 왼팔을 넣는 식인데요. 그렇게 상의 두 개를 성공적으로 입고, 이번엔 하의 시작으로 기저귀를 착용할 차례인데 고민 없이 머리로 가져갑니다.    

  

 한쪽 구멍으로 머리를 끼우더니 나머지 구멍으로 오른팔을 밀어 넣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나오는 웃음을 삼키고 ‘엄마 이거 입는 데가 다른 거 같은데’ 나름 생각할 시간을 주고자 천천히 애써 부드럽게 말했더니 하던 동작 그대로 힘을 쓰며 단호하게 ‘어떻게든 입어봐야지’합니다. 포기란 없다는 확고함으로.    

 

 엄마는 옷을 하나 입을 때마다 궁리를 했나 봅니다. 옷을 뒤적이던 동작이 어떻게 하면 이걸 입을 수 있을까를 매번 새롭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던 게죠. 행동을 재촉할 수 없는 항목이 하나 더 생긴 셈인데요.  

잠시 기저귀의 용도를 잊었다면 끝까지 혼자 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잔존기능을 최대한 살려야 하지만 이번엔 말없이 입혀드립니다. 자칫 지시하거나 가르치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서 말입니다.


 의식 없이 할 수 있던 사소한 일들 중 하나가 깨어있어 기억해야 하는 숙제가 된듯한데요. 걷는 것도 잊을 때가 오려나 잠시 막연한 걱정이 스쳐갑니다.     

신발 신고 방으로 들어오기, 옷걸이에 걸린 옷을 보이는 대로 겹겹이 입기, 손에 닿을 만한 물건은 모두 들고 쓰고 입고 넣어 가져오기, 등등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들이 나름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게 우습기도 하고 “어떻게든 입어봐야지”라는 엄마의 말이 어떻게든 해봐야지 어떻게든 살아봐야지라는 말과 겹치지면서 녹녹지 않은 환경에서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지를 짐작하게 하니 고심하는 표정, 어눌한 동작에 감사한 마음이 얹어집니다. 


그날 이후 일주일째 독감으로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릴 때 문득 스치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일어나 봐야지~”


  K People Focus 최영미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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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0.18 10:08 수정 2026.10.1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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