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최서하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3자 회담을 여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회동 날짜로는 18~19일이 잠정 거론되지만 개최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세 정상은 각각 만난 적은 있으나 세 사람이 함께 공식 회담을 한 전례는 없다.
알자지라의 6일 보도에 따르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일 베이징에서 중국이 세 정상의 회동과 관련해 관계 당사자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3일 회담 조율 작업이 진행 중이라며 며칠 안에 마무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시 주석이 원한다면 핵무기에 초점을 맞춘 3자 대화에 응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정치분석가인 알렉산드르 브라테르스키는 회담 개최 자체가 러시아의 성과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미국·중국 정상과 한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안보 질서를 결정할 당사자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우크라이나를 주변부로 밀어낼 수 있다는 평가다.
그는 러시아 의회 외교위원장 표트르 톨스토이가 이번 회동을 새로운 얄타로 가는 길로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얄타 회담은 1945년 소련·미국·영국 지도자들이 유럽의 전후 질서를 형성한 회의다. 브라테르스키는 회담에서 성과가 나온다면 중국의 대러시아 영향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번 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의 통제권을 확보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약해졌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외교정책을 계속 주도하더라도 민주당이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하면 협상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회담 성과는 한 달가량 지나야 드러날 것이며, 12월 마이애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추가 회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탄절 전까지 성과가 없다면 기념사진을 남기는 행사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측 동기를 놓고 인더지트 파르마 런던대 시티 세인트조지스 국제정치학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두 강대국을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하는 극적인 만남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와 무역, 에너지, 군비통제 분야의 잠재적 합의를 내세워 자신을 핵심 협상가로 부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파르마 교수는 중간선거 이후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국내 정치 상황도 배경으로 꼽았다. 회담의 실질적 내용이 제한적이거나 상징적이어도 세 정상이 함께 앉은 모습을 미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할 수 있으며, 약화하는 마가(MAGA) 지지층을 비롯한 국내 청중도 외교 상대만큼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핵군축을 회담 의제로 삼는 데 별도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10월 30일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난 뒤, 세 정상이 선전에서 만날 가능성은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독일 공영방송 ARD에 밝혔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에 따르면 시 주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의 분쟁이며 유럽인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현 단계에서 중국에 이른바 3자 핵군축 협상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밝혔다.
파르마 교수는 별도의 3자 회담이 미국이 유럽·아시아 동맹과 긴밀히 조율한 뒤 러시아나 중국과 대화해 온 1945년 이후의 방식에서 뚜렷이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맹의 이해관계를 사후에 처리하거나 거래할 수 있는 문제로 취급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지도자 개인 중심의 강대국 외교로 향하는 변화로 보면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러시아와 중국 사이를 벌리려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우크라이나·대만·기술·국제경제 규칙에서 세 나라의 이해가 크게 갈리는 만큼, 제도화된 ‘G3’가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됐다고 평가했다. 그가 지목한 위험은 공식 협의체의 출범보다 직접 영향을 받는 당사자와 충분히 상의하지 않는 강대국 간 거래가 관행이 되는 데 있다. 그는 역사적으로 이런 방식이 안정적인 질서를 만들어낸 경우는 드물고, 배제된 이들이 비용을 떠안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