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일보=이태오기자] 유럽의 학생·노동조합 시위에서 검은 옷과 얼굴을 가리는 장비를 착용한 ‘블랙 블록’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정체와 폭력 행위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블랙 블록은 알려진 지도부나 통일된 조직 체계를 갖춘 단일 단체라기보다, 비슷한 복장과 행동 방식으로 시위 현장에 모이는 느슨한 집단으로 설명된다.
알자지라는 11월 6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시위에서 나타나는 블랙 블록의 기원과 활동 방식을 보도했다. 이들은 공공·민간 재산을 파손하거나 차량과 건물에 불을 지르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일부는 침입과 물품 절도 의혹도 받는다. 사회·정치·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을 모은다는 평가와 함께, 폭력으로 다른 참가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가린다는 비판이 맞선다.
몬트리올 퀘벡대의 정치학 교수 프랜시스 뒤퓌데리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이 흐름이 1980년대 독일의 자율주의 운동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참여자들은 국가와 자본주의, 정당뿐 아니라 공산주의 세력과 노동조합에도 반대했으며, 제도 밖에서 살아가려는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검은 가죽 재킷과 후드 옷, 헬멧, 선글라스, 두건 등은 경찰이 개인을 식별하기 어렵게 하는 수단이었다. 뒤퓌데리는 블랙 블록에 지도부나 위계, 대변인, 공식 성명이 없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복장으로 서로를 알아보거나 입소문을 통해 모이고, 여러 차례 시위에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다만 이를 특정한 좌우 이념과 곧바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과거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우익 민족주의자와 신나치 집단도 블랙 블록의 복장과 폭력적 방식을 사용한 사례가 있었다. 그는 이런 사례가 최근의 일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프랑스에서는 수주 동안 학생과 노동조합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며 폭력과 재산 피해가 문제가 됐다. 로랑 뉘네즈 프랑스 내무장관은 1월 의회 발언에서 규모가 큰 사회적 시위마다 기물을 부수고 치안 인력을 공격하는 블랙 블록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최근 전국 집회를 조직하고 지지한 정당 소속의 프랑스 좌파 유럽의회 의원실은 알자지라의 관련 질의에 민감한 사안이라며 논의를 꺼렸다. 의원을 공식 대변할 권한이 없는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일부 폭력 사례를 이용해 자신들의 운동과 정당을 범죄시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로마·밀라노·토리노에서 경찰과의 충돌, 차량·쓰레기통 방화, 재산 피해와 부상이 발생했다. 오성운동 소속 마리오 푸로레 유럽의회 의원은 블랙 블록에서 영향을 받은 운동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밀라노의 약탈과 기물 파손에 관여한 이들은 매우 어려 보였고 상당수가 미성년자로 보인다며, 조직적 네트워크보다는 모방 행동과 나쁜 본보기의 영향에 가깝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사실관계는 수사 중인 사법당국이 규명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성도 특징으로 꼽힌다. 뒤퓌데리는 회원 명부가 없어 정확한 규모는 알기 어렵지만, 정보기관들이 유럽 내 인원을 약 5천~7천 명으로 추산하며 개별 시위에는 수백 명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과거 다른 나라 시위에 참가한 사례는 있으나, 최근 시위에 관한 유럽 정부의 관련 정보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2023년 이탈리아 정부의 경찰 심화교육 문서는 블랙 블록을 작고 느슨하게 조직된 집단을 활용하는 무정부주의적 봉기 전술로 설명했다. 문서는 시위에 침투해 이를 급진화하고 기물 파손과 폭력을 부추기는 것이 목적이라고 기술했다. 또 사전에 표적 장소를 정찰하고 구역을 나눠 팀별로 맡기며, 일부 팀이 경찰의 주의를 돌리는 동안 다른 팀이 파괴 행위를 벌이는 전술을 쓴다고 설명했다. 높은 이동성은 피해를 극대화하면서 참가자의 체포 위험을 줄이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과거 사례로는 1999년 미국 시애틀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와 2016년 6월 프랑스의 전국적인 노동법 반대 시위가 꼽힌다. 두 시위 모두 경찰과의 충돌 속에 수백 명이 다치거나 체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