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전승환] 아이 키우려면 서울을 떠나야 하나?

▲전승환/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부터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됐을까. 강북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 전셋값이 8억원을 넘고, 마포 등 일부 지역에서는 10억원에 육박한다.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전셋집에 들어가는 일조차 서민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이 됐다. 집값이 올랐다는 단순한 통계 뒤에는 결혼과 출산, 교육과 직장생활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평범한 가정의 한숨이 쌓여 있다

 

전셋값 8억원을 마련하려면 얼마나 벌어야 할까. 매달 300만원씩 저축해도 한 푼 쓰지 않고 22년 넘게 모아야 한다. 생활비와 자녀 양육비를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계산이다.

 

부족한 보증금을 대출로 메우더라도 부담은 끝나지 않는다. 5억원을 연 5% 금리로 빌린다면 이자만 매달 약 208만원이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로 내고 나면 아이의 교육비와 식비, 노후 준비에 쓸 돈은 그만큼 줄어든다.


집은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주거시장은 가정을 꾸리려는 사람에게 먼저 지불 능력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더 큰 문제는 주거비가 단순히 가계 지출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선택 전체를 좌우한다는 데 있다.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며, 아이의 학원비를 줄이고 더 먼 지역으로 밀려나는 일이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의 배경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가 놓여 있다.

 

직장과 학교, 의료와 문화시설이 집중된 서울에서 살려면 비싼 집값을 감수해야 하고, 이를 피하려면 장거리 출퇴근과 생활권의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해도 평범한 가정의 부담은 가볍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책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출산지원금이나 양육수당도 필요하지만, 수억원의 전셋값과 매달 수백만원의 주거비 부담 앞에서는 일회성 지원만으로 한계가 뚜렷하다.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면서 아이와 함께 살아갈 집을 마련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라면 정책의 우선순위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은 분명하다. 첫째, 청년과 신혼부부, 자녀를 둔 가정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과 부담 가능한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주택 공급이 실제 수요가 있는 지역과 연결되도록 교통·교육·보육 인프라를 함께 확충해야 한다. 셋째, 전세대출 지원은 단순히 대출 한도를 늘리는 데 그치지 말고,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빚을 더 내도록 돕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서울 집중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 일자리와 교육 기회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한, 사람들은 높은 주거비를 알면서도 서울을 떠나기 어렵다.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의료 기반을 마련하지 않은 채 지방으로 이주하라고 권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처방이다. 어디에 살든 안정적으로 일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주거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물론 모든 지역의 집값을 낮은 수준으로 묶거나 주거비를 전적으로 공공재정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에만 맡겨 두면 주거 여건이 취약한 계층부터 밀려날 수 있다는 사실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주택은 투자자에게는 자산일 수 있지만, 거주자에게는 삶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이다. 정책은 이 두 가지 기능 사이에서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개인의 능력과 절약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개인에게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할 때가 아니다. 월급을 모아도 전셋값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고, 대출을 받아도 이자 부담에 허덕이며, 아이를 키우는 비용 때문에 미래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가 풀어야 할 구조적 문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경제적 모험이 되고, 서울에서 살아가는 일이 특권이 되는 사회에는 지속 가능한 미래가 없다. 주거 안정은 부동산 정책에만 머무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의 결혼과 출산, 기업의 인재 확보, 국가의 인구 구조와 경제 활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다. 집값과 전셋값을 단순한 시장 지표로만 바라보지 말고, 그 숫자가 국민의 삶에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 직시해야 한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면 가족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 그 최소한의 희망을 되살리는 것이 주거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자의 선택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권리가 될 때, 비로소 주거정책도 저출생 대책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아이 키우려면 서울을 떠나야 하나?(필자 전승환 제공) ⓒ한국공공정책신문




전승환

학교법인 동광학원 감사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조정위원

한국정책방송 전문위원

Job & Future News 논설위원






작성 2026.10.26 11:16 수정 2026.10.2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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