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재 김득신은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영조~순조 때의 화원화가다. 나이는 김홍도보다 아홉 살 아래다. 큰아버지가 이름난 화원 복헌 김응환이고 친가, 외가, 처가에 화원이 많은 화원 명문가 출신이다. 인맥 없이 재능만으로 화원에 오른 김홍도와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두 사람 모두 실력은 최고였다.
김득신은 감식안이 높았던 정조에게 부채그림이 "김홍도와 백중할 만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정조 때의 대수장가 김광국은 그가 김홍도의 화법을 모두 터득해 이따금 능가하기도 했다고 기록했다. 순조 때 영의정을 지낸 남공철의 시에는 말과 웃음이 적은 조용한 성품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그는 44년 이상 화원으로 나라의 그림 업무를 맡았으며, 1795년 정조의 화성행차를 그린 '화성원행도병'(리움미술관 소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출문간월도'는 문밖에 나가 달을 본다는 뜻의 작품이다. 키 큰 오동나무에 걸린 보름달을 보며 짖는 삽살개와 소년을 그렸다. 풍속화로는 드물게 인장이 6방이나 찍혔고, 화풍도 묵법 위주의 성근 필치를 쓴 문인화풍이다. 판독되는 인장은 '현보', '김득신인', '촌심천고', '함영저화'다.
그림에는 "개 한 마리가 짖자 다른 개가 짖고, 만 마리가 이 한 마리를 따라 짖는다. 아이를 불러 문밖에 나가 보라 했더니 달이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걸려 있다 하네"라는 제화가 적혀 있다. 원래 이 이야기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짖는 개들을 빗대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음을 꾸짖는 뜻이었다.
그러나 '출문간월도'는 교훈을 전하는 그림이 아니다. 벽오동 위로 환한 달이 둥실 떠오르자 놀라 짖는 충직한 삽살개와 천진한 소년으로 달밤의 작은 사건을 가을 정취로 버무렸다. 오동잎은 가을이 되면 가장 먼저 지는 잎이다. 풍속화의 해학에 계절의 서정을 더한 김득신의 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