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을 쓰지 않는 시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결제 건수 중 현금 비중은 2013년 약 41%에서 2024년 약 16%로 떨어졌다. 돈을 찍는 회사인 한국조폐공사도 '제2의 석탄공사'라는 우려를 들어야 했다. 2023년 10월 취임한 성창훈 사장은 당시를 '뼈만 남아 있는 형상'이라고 회상했다.
그런 조폐공사가 부활했다. 2023년 4461억원이던 매출은 2년 만에 역대 최대인 6386억원으로 늘었고, 영업이익도 122억원에서 212억원이 됐다. 성 사장이 우진구 홍보실장과 함께 쓴 책 '세상을 바꾸는 화폐 이야기'(매일경제신문사)는 이 생존 과정을 담았다. 성 사장은 "서서히 잊히는 길과 새로운 존재 이유를 찾는 길, 그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공사가 주목한 것은 반세기 넘게 다듬어온 위조 방지 기술이다. 홀로그램, 형광 잉크,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뀌는 잉크, 요판 인쇄 등의 기술은 모바일 신분증과 지역사랑상품권 '착(chak)', 온누리상품권 플랫폼, 굿즈 사업으로 이어졌다.
폐기물을 자원으로 바꾼 시도도 눈에 띈다. 화폐 제작·유통 과정에서는 해마다 약 500톤의 부산물이 나오는데, 잘못 찍힌 신권 100톤과 한국은행으로 돌아온 폐지폐 400톤이다. 대부분 소각되며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공사는 이를 활용해 친환경 브랜드 '머니메이드'를 선보였고, 파쇄 지폐를 넣은 돈볼펜은 출시 두 시간 만에 완판됐다. BTS 데뷔 10주년 기념메달은 17개국에 수출됐다. 경산 화폐본부의 20년 넘게 비어 있던 약 2000평 지하 벙커는 국가 미술품 수장고로 바꾸고 있다.
공사가 그리는 다음 단계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조폐기관'이다. 열쇠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성 사장은 "누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무엇을 믿고 이 디지털화폐를 사용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공사는 지역사랑상품권과 모바일 신분증으로 입증한 신뢰 기술을 디지털 화폐 시장으로 넓혀, 발행 기관과 금융회사, 민간 플랫폼 사이에서 인증·검증·보안을 제공하는 공공 인프라 기관을 목표로 한다. 돈의 모양은 바뀌어도, 그 돈을 믿게 만드는 일은 여전히 조폐공사의 몫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