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기 79년,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폼페이에서는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상인들은 가게 문을 열고 시민들은 목욕탕과 시장으로 향했다. 빵집에서는 화덕에 빵을 굽고 있었고, 귀족의 저택에서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도시 북쪽에 자리한 베수비오산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폼페이의 시간은 갑자기 멈췄다.
폼페이는 로마제국에서도 생활수준이 높은 도시였다. 비옥한 화산 토양에서 포도와 올리브가 잘 자랐고, 나폴리만과 가까워 상업과 휴양문화가 발달했다. 대저택과 상점, 공중목욕탕, 원형경기장, 음식점이 들어선 거리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았다. 오늘날의 번화한 관광·상업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풍요를 가져다준 베수비오산은 도시의 가장 큰 위험이기도 했다. 폼페이 지역에서는 화산 폭발 이전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반복됐다. 특히 서기 62년 또는 63년 무렵 발생한 강한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파손됐고, 폭발 당시까지도 일부 주택과 공공시설이 수리 중이었다.
문제는 반복되는 흔들림이 주민들에게 위험 신호가 아니라 익숙한 일상이 됐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대규모 폭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산을 당장 피해야 할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위험이 반복되면 오히려 경계심이 무뎌지는 ‘재난의 일상화’가 이미 폼페이에서 나타난 셈이다.
베수비오산이 폭발하자 거대한 화산재와 가스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하늘은 어두워졌고 경석과 화산재가 비처럼 쏟아졌다. 주민들은 집 안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 문을 닫고 숨어 있거나 귀중품을 챙기며 대피 시기를 놓쳤다. 일부는 도시를 빠져나갔지만 가족이나 재산을 지키려고 남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화산재와 경석은 건물 지붕 위에 계속 쌓였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붕과 벽이 무너지면서 집 안에 머물던 사람들이 희생됐다. 폼페이 유적관리 당국은 초기 분화 때 빠져나가지 못한 주민들이 약 3m 높이까지 쌓인 화산 물질과 건물 붕괴에 갇혔다고 설명한다.
더 치명적인 위협은 이후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 화쇄류였다. 뜨거운 가스와 화산재, 암석 조각이 뒤섞인 화쇄류가 빠른 속도로 도시를 덮치면서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피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았다. 고온의 화쇄류는 건물과 거리를 순식간에 뒤덮었고 폼페이는 두꺼운 화산재 아래 묻혔다.
폭발 장면은 당시 나폴리만 건너편에서 상황을 지켜본 소(小)플리니우스의 편지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거대한 구름이 소나무처럼 하늘로 솟아오르고 화산재 때문에 낮이 밤처럼 어두워졌다고 기록했다. 그의 관찰은 훗날 폭발성 화산 분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됐으며, 오늘날 ‘플리니식 분화’라는 용어에도 이름이 남았다.
폼페이가 정확히 어느 날 파괴됐는지를 두고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8월 24일이라는 견해가 널리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10월 폭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도 제시됐다. 10월 17일로 해석되는 숯글씨와 가을 과일, 난방도구, 두꺼운 옷의 흔적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날짜에 대한 논쟁과 별개로 서기 79년 베수비오산 폭발로 도시가 매몰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폼페이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고대 로마인의 일상을 보존했다. 화산재가 건물과 벽화, 식기, 빵, 낙서와 생활용품을 덮으면서 당시 모습이 오랜 세월 남을 수 있었다.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된 폼페이는 황제와 전쟁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평범한 시민들의 식생활과 주거, 오락, 상업활동을 보여주는 거대한 생활사 박물관이 됐다.
특히 희생자들의 석고상은 재난 앞에서 멈춘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전한다. 19세기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는 화산재 속에서 시신이 부패한 뒤 남겨진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사람들의 자세를 복원했다. 몸을 웅크린 사람과 얼굴을 가린 사람, 서로 가까이 있던 가족의 모습은 고대의 사건을 오늘의 아픔으로 다가오게 한다.
폼페이가 현대사회에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자연재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피해는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은 지진과 반복되는 경고에 익숙해져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대피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재산을 챙기거나 가족을 기다리다 판단이 늦어지는 것도 재난 현장에서 되풀이되는 위험이다.
재난안전은 첨단 관측장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확한 정보 전달과 사전 대피계획, 반복적인 교육과 훈련, 그리고 경고가 내려졌을 때 즉시 행동하는 시민의 판단이 함께해야 한다. 폼페이는 우리에게 말한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전에 여러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이다. 그 신호를 두려움이 아니라 행동으로 연결할 때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