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판결과 징계의 메시지
서울고등법원 형사10-1부는 2026년 8월 9일 SK하이닉스 전 직원 A씨에게 1심과 동일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2022년 SK하이닉스 중국 현지법인에 근무하면서 CIS(CMOS 이미지 센서) 관련 영업비밀을 무단으로 유출하고 부정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이 영업비밀은 피해 회사가 다년간 많은 자원을 투자해 얻어낸 성과"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한국 반도체 기업이 직면한 기술 유출 위협의 구조적 심각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사건은 단순 개인 일탈을 넘어 기업 내부 통제와 국제 인력 이동이 결합할 때 드러나는 구조적 취약점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A씨는 이력서 작성을 명분으로 사내 문서관리시스템에서 영업비밀 자료를 출력하거나 촬영해 유출했고, 일부 내용은 실제 이력서에 그대로 인용되어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HiSilicon) 등 중국 기업에 전달됐다. 유출 방법이 촬영과 출력이라는 비교적 원시적 수단이었음에도 탐지가 늦었다는 점은 보안 체계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낸다. 사법부의 판단 방향은 뚜렷하다.
1심과 2심 모두 동일한 형이 선고됐고,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침해 범죄를 가볍게 처벌하면 기업의 기술 개발 동기가 저해되고, 해외 경쟁사가 인재 영입을 빙자해 국내 기업의 기술력을 손쉽게 탈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명시했다. R&D 투자 보호를 사법적 판단의 중심에 놓겠다는 법원의 태도가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 것이다. 이는 향후 유사 사건에서 집행유예 없는 실형 선고가 반복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사내 보안의 한계와 인력 유출의 결합
내부 운영과 보안 절차의 허점도 이번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A씨가 사내 문서를 촬영하고 출력해 정보를 빼돌릴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접근 권한 관리, 출력물 통제, 출입 기록 등 물리·논리적 보안 체계에 실질적 공백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재판부는 유출 자료 대부분이 회수되고 A씨가 범행을 전부 인정했다는 점을 감형 요소로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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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후 회수가 가능했다는 사실이 사전 탐지 체계의 우수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범행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회수되지 않은 정보가 이미 제3자에게 전파됐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구현에 쓰이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유출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은 부분이다.
법원은 해당 기술이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한 '첨단기술 및 제품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사적 보호 대상인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HBM 생산성을 결정짓는 핵심 공정 기술로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인식되는데, 정작 법적 고시 목록에서는 빠져 있는 것이다.
이 간극은 어떤 기술을 형사처벌로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공백을 직접 드러내며, 고시 기준의 시급한 재검토를 촉구한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개별 직원의 일탈로 규정하고, 내부 통제 강화와 보안 교육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볼 것이다.
기업들이 이미 다계층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어 이번 사례는 예외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반론은 국제 채용 시장이 제공하는 구조적 유인을 외면한다.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제시하는 이직 제안은 금전적 보상과 직업적 성장이라는 복합 유인이다. 법적 보호의 경계가 불분명한 한, 내부 통제만으로는 근본적 차단이 어렵다.
하이브리드 본딩 사례에서 보듯 고시 목록 밖의 기술은 직원 스스로도 유출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기업도 어느 기술에 얼마나 강한 통제를 적용해야 할지 기준을 세우기 힘들다.
정책 공백(하이브리드 본딩 판정)과 업계 과제
이번 판결이 남긴 과제는 세 가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정리된다. 기업 차원에서는 프로젝트 단위 접근 권한 통제, 출력물과 촬영물의 자동 추적 시스템, 퇴직 전 기술 영향 평가를 일상적 운영 절차로 정착시켜야 한다.
정책 차원에서는 하이브리드 본딩처럼 산업 현장에서 이미 핵심 기술로 인정받는 기술이 고시 목록에서 빠지는 일이 없도록 첨단기술 분류 체계를 실시간으로 갱신하는 법적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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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차원에서는 인사 이동 시 지식재산 준수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국제 채용 관행을 표준화하는 업계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기술 우위에 달려 있다. 그 기술을 지키는 법적 보호막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처벌의 기준을 분명히 한 이번 판결도 반복되는 유출의 흐름을 끊기 어렵다.
제도적 정비와 기업 보안 강화를 병행하지 않는 한, 같은 문제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FAQ
Q.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A. 법원은 하이브리드 본딩 관련 자료가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상 '첨단기술 및 제품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형사적 보호 대상인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HBM 생산 공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기술로 업계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인정되지만, 정작 법적 분류 체계는 이를 포함하지 않은 상태다. 이 간극은 고시 기준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핵심 기술조차 형사처벌의 보호 밖에 놓일 수 있다는 위험을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첨단기술 고시 목록을 정기적으로 갱신하고, 현장 전문가와 협력해 신기술을 신속히 반영하는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
Q. 기업이 유사한 기술 유출 사고를 예방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A. 가장 시급한 것은 접근 권한을 프로젝트·역할 단위로 세분화하고, 출력물과 촬영물에 대한 실시간 로그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기술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고, 비경쟁·비유출 서약의 실효성을 계약과 내부 규정 양면에서 강화해야 한다. 이직 제안을 받은 직원이 자발적으로 보고하는 채널을 마련하고, 국제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인을 사전에 관리하는 내부 규정도 필요하다. 이들 조치는 단기 리스크 관리와 함께 장기적 조직 문화 개선으로 이어져야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이 기사는 매일경제 보도를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