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드 위에서 아이들은 참 쉽게 흔들립니다. 작은 미스샷 하나에도 어깨가 내려앉고, 지나간 홀의 기억을 다음 홀까지 끌고 가기도 하죠. 그럴 때 어른들이 건네는 다독임과 숨 고르기가 아이를 다시 걷게 만든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더 오래 지켜보다 보면, 다정한 위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깊은 갈증과 마주합니다. 채워도 채워도 모자란 비거리, 체크리스트처럼 다가오는 신체적 열세, 혹은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지는 성장의 정체기 같은 진짜 결핍 말입니다.
그럴 때 어른들은 자주 불안해집니다. 아이의 부족함을 보면 그 결핍을 너무 빨리 치워주거나 숨겨주려 애씁니다. 하지만 제가 본 가장 위험한 선수는 부족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부족함을 다뤄본 적 없는 선수였습니다.
결핍의 재정의: 감춰야 할 약점이 아닌, 성장의 절대적 연료
아이의 스코어카드에 적힌 작은 마이너스 하나에도 어른들은 왜 이토록 가슴이 내려앉을까요. 내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져 보인다는 공포, 혹은 내가 부모로서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의 부족함을 미리 감추려 하고, 선수들은 약점을 들킬까 두려워하며, 코치들은 당장 그 구멍을 메우려 애씁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골프 현장을 지켜보며 깨달은 진실은 명확합니다. 결핍은 없애야 할 하자가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 세상에 부딪히며 진짜 가장 진정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반드시 품어야 할 유일하고도 강력한 불쏘시개입니다. 결핍이 없으면 치열한 고민도, 눈을 번뜩이는 깨달음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결핍은 아이를 비로소 진짜 선수로 눈뜨게 만드는 가장 진정한 성장의 시작점입니다.
필드 위에서의 적용: 비거리와 성장의 정체기라는 신호
드라이버가 동반자들보다 훌쩍 뒤처져 떨어지는 광경을 볼 때면,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의 어깨도 속수무책으로 꺾입니다. ‘저 아이는 저렇게 멀리 보내는데 내 아이는 왜 이 모양일까’ 하는 불안이 코스 전체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한때 또래보다 체격이 작아 비거리가 20~30m 짧은 선수가 있었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 그 아이는 스코어카드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늘 물리적인 신체 열세를 걱정했고, 선수 역시 그것을 가장 큰 약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습장에서 그 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코치님, 비거리가 늘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그날 이후 연습이 달라졌습니다. 무작정 드라이버 비거리에만 매달리는 대신 정교한 숏게임과 코스 매니지먼트를 연구했고, 파 5홀에서도 무리한 투온보다 자신이 있는 거리로 세 번째 샷을 남기는 법을 익혔습니다. 결국 그 선수를 비범하고 스마트한 골퍼로 완성시킨 것은 늘어난 비거리가 아니라, 그 치명적인 결핍을 정면으로 돌파해 낸 진짜 성장이었습니다. 반대로 체격도 좋고 지원도 충분했지만 시합장에서 흐름이 끊기면 무너지는 선수에게 부족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결핍의 고통을 영양분 삼아 본질을 파고들어 본 경험이었습니다.
비교와 열등감과의 차이: 타인이 아닌 내 안의 간극
시합장이 끝나고 클럽하우스 앞을 서성이며 다른 아이들의 백을 훔쳐보는 어른들의 눈빛 속에는 조급함이 가득합니다. ‘왜 우리는 저 장비를 쓰지 못할까’, ‘저 아이는 벌써 저런 구질을 구사하는데’라는 비교는 부모의 한숨이 되어 아이의 등 뒤에 고스란히 꽂힙니다.
건강한 결핍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과 다릅니다. 친구의 화려한 스코어카드나 다른 선수의 비거리를 부러워하며 자기를 깎아내리는 것은 에너지를 갈아먹을 뿐입니다. 진짜 결핍이 주는 위대한 자극은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가 아니라, '내 안의 목표와 현재의 내 실력 사이에 존재하는 이 간극을 내가 직접 채워내겠다'는 결의에서 출발합니다. 비거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효율적인 스윙을 발명하고, 멘탈이 흔들렸기 때문에 자신을 극한으로 관찰하는 진짜 성장의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부모와 코치의 역할: 스스로 채우는 즐거움을 기다려주기
아이가 차에 타자마자 모자 챙을 만지작거릴 때, 부모는 쏟아지는 불안을 참지 못하고 날 선 질문들을 꺼내놓고 싶어집니다. ‘왜 그랬어’라는 추궁으로 아이의 부족함을 당장 난도질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죠.
학부모와 코치의 역할은 여기서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의 결핍을 어른들이 가여워하며 미리 메워주려 하는 순간, 아이는 결핍이 가져다주는 찬란한 성장의 기회를 통째로 도둑맞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차 문이 닫힌 뒤 침묵의 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침묵은 방관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결핍의 무게를 삼키고 비로소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에너지를 충전하는 가장 넓은 주차장이 되어줍니다.
코치 역시 “너는 멘탈이 약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압박 속에서 템포가 빨라진다면 어떤 루틴으로 호흡을 되찾을 것인가”라며 결핍을 뜨거운 훈련의 언어로 바꿔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부모와 코치가 해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결핍을 치워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 결핍이라는 배고픔 속에서 스스로 스윙을 고민하고 세상을 깨우치는 과정을 묵묵히 신뢰하며 지켜봐 주는 일입니다.
결핍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끝없는 결핍을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아이는 진짜 가장 진정한 성장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오래가는 선수는 부족함이 없는 아이가 아닙니다. 자기 결핍을 성장의 유일한 무기로 삼아 끝까지 걸어간 아이입니다. 부족함은 숨길수록 약점이 되지만, 마주하고 이용할수록 가장 확실한 실력이 됩니다. 결핍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결국 필드 위에서도 삶의 위기에서도 자기 게임을 당당히 주도하는 가장 단단한 아이를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