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성과급 파업을 넘어, 노사상생의 ‘공정한 몫’을 고민할 때

▲박동명/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법학박사는 한국공공정책신문 발행인이자 선진사회정책연구원장이다.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법 분야인 노동법을 전공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서울특별시 공익감사위원, 서울특별시교육청 청렴시민감사관, 강남구 결산검사위원 등을 지냈다. 노인, 장애인,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와 지방의회 의정활동 역량 강화를 주요 연구·강의 분야로 삼아 왔으며, 국회의정연수원과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 등에서 예산·결산 심사, 행정사무감사, 조례입법, 주민참여제도, 인공지능 활용 의정혁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반도체 대기업의 성과급 논쟁을 계기로 원·하청 노동자 간 격차, 성과공유, 노사상생의 제도적 방향을 사회법적 관점에서 짚어 본다.



반도체 산업이 다시 뜨겁다. 인공지능 산업의 폭발적 성장,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 주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핵심 기업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만큼 성과급과 이익 배분을 둘러싼 노사 갈등도 거세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성과급 산정 방식의 개선, 성과급 상한 폐지, 기본급 인상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협상 결렬 시 장기 파업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는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사측은 일부 부문에 대해 영업이익의 10% 수준을 성과급 재원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인공지능 반도체 호황 속에서 높은 성과급 지급이 거론되면서, 대기업 반도체 노동자 사이의 보상 격차와 성과급 기준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자신들의 기여에 상응하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성과에 따른 정당한 보상은 노동존중 사회의 중요한 원칙이다. 헌법은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이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와 사회국가원리가 함께 작동하는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권리이다. 기업의 이익이 급증했는데도 그 성과가 노동자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노사 간 신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오늘의 성과급 논쟁은 단순히 “대기업 정규직이 얼마를 받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그 성과는 과연 누구의 노동으로 만들어졌는가. 그 위험은 누구의 몸으로 감당되었는가. 그리고 그 이익은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배분되고 있는가.


반도체 공장은 대기업 본사 정규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공장 안팎에는 수많은 협력업체 노동자, 하청 노동자, 장비 유지보수 인력, 물류·청소·보안·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같은 생산 일정에 묶이며, 때로는 더 위험하고 불규칙한 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성과급 논의가 시작되면 이들은 자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실적을 만드는 과정에는 함께 있었지만, 이익을 나누는 자리에는 초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산업 구조는 외주화와 하청화를 빠르게 확대해 왔다. 대기업은 핵심 공정과 고부가가치 기능은 내부화하면서도, 위험하고 힘들거나 인력 변동성이 큰 업무는 외부 협력업체에 맡겨 왔다. 그 결과 같은 산업 생태계 안에서 일하면서도 임금, 복지, 고용 안정성, 성과급 수준은 크게 달라졌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서도 수급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위탁기업의 약 60% 수준에 머물고, 그 격차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특별급여·상여금 등 성과공유 수준의 차이에 있다는 분석이 제시된 바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원·하청 간 성과 배분 격차는 사회법의 핵심 주제이다. 노동법은 본래 계약의 형식 뒤에 숨어 있는 실질적 종속과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해 발전해 왔다. 근로자는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유롭게 계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계 의존성과 조직 종속성 때문에 약자의 지위에 놓이기 쉽다. 특히 하청 노동자는 원청의 생산계획과 품질 기준, 납기 압박, 안전관리 체계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도 법적 사용자는 협력업체라는 이유로 원청 성과 배분의 바깥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 지점에서 사회법의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노동법은 임금을 단순한 시장가격으로만 보지 않는다. 임금은 인간다운 생활의 기초이며, 노동자의 존엄과 가족의 생계, 미래 계획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권리의 토대이다. 따라서 성과급 역시 단순한 보너스가 아니다. 성과급은 기업 내부에서 “누가 기여자로 인정받는가”를 보여 주는 사회적 신호이다. 어떤 노동자는 수억 원대 성과급 논의의 중심에 서고, 어떤 노동자는 위험 업무를 담당하면서도 소액의 격려금이나 제한된 복지 혜택에 그친다면, 그 산업 생태계는 공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성과급은 법적으로 모든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지급되어야 한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기업마다 고용관계가 다르고, 협력업체의 계약 구조와 임금 체계도 다르다. 그러나 “법적 의무가 없으니 관계없다”는 태도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대기업은 단순한 개별 기업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지배적 조정자이다. 원청의 단가 결정, 납기 압박, 품질 기준, 공정 운영 방식은 협력업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원청은 성과가 발생했을 때 그 성과를 협력업체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조합도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파업권은 헌법상 권리이며, 정당한 단체행동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사회적 설득력을 얻으려면 “우리 조합원의 몫”을 넘어 “함께 일한 사람들의 몫”을 고민해야 한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성과급 규모에만 집중하고, 같은 공장에서 같은 위험을 감수하는 하청 노동자의 처지를 외면한다면, 그것이 과연 노동존중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이 진정한 사회적 연대를 말하려면, 교섭 의제 안에 협력업체 노동자에 대한 성과공유, 안전보건 기준의 동일 적용, 위험 업무 보상 확대, 원·하청 공동 복지기금 조성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


기업 역시 달라져야 한다. 성과를 공유하는 것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 투자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본사 연구개발 인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장비 유지보수, 클린룸 운영, 공정 지원, 물류, 안전관리, 협력업체의 숙련 기술이 모두 결합되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 반도체 시대에는 생산 차질, 품질 리스크, 숙련 인력 이탈이 곧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원·하청 상생협력 지원정책에 대한 한국노동연구원의 고용영향평가 역시 원·하청 간 격차 완화와 성과공유제의 필요성을 주요 정책 과제로 다루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제도 설계이다. 노사상생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성과급 산식, 배분 기준, 협력업체 참여 구조, 안전·복지 기준, 재투자 원칙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반도체와 같이 국가 전략산업의 성격을 갖는 분야에서는 기업 내부 노사관계를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상생형 성과공유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대기업은 일정 기준 이상의 초과이익이 발생할 경우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원·하청 공동 상생기금’으로 적립할 수 있다. 이 기금은 원청 정규직 성과급과 별도로 운영하되, 협력업체 노동자의 성과금, 안전수당, 직무교육, 복지 지원, 산업재해 예방 투자에 사용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둘째, 기금 배분은 원청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원청, 협력업체, 노동자 대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동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투명하게 심의해야 한다. 셋째, 단순히 현금을 나누는 방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숙련 형성, 안전 설비 개선, 직무 전환 교육, 장기근속 장려, 협력업체 기술혁신 지원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야 성과공유가 일회성 시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구조적 투자로 전환될 수 있다.


성과급 기준도 투명해야 한다. 현재 많은 기업의 성과급 제도는 직원들이 충분히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운영된다. “회사가 정한 공식”이라는 말만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영업이익, 현금흐름, 연구개발 투자, 주주 배당, 재투자 필요성, 경기 변동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되, 그 산식은 사전에 공개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호황기에는 지나친 기대가, 불황기에는 극단적 박탈감이 줄어든다.


성과 배분의 균형도 중요하다. 기업 이익은 노동자만의 것도 아니고, 주주만의 것도 아니며, 경영진만의 것도 아니다. 이익은 노동, 자본, 기술, 협력업체, 지역사회, 국가적 산업 인프라가 함께 만든 결과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세제 지원, 인프라 투자, 인력 양성, 전력·용수 공급, 국가 전략산업 정책의 혜택을 받는다. 그렇다면 성과 배분 역시 정규직 성과급, 협력업체 상생, 주주 배당, 연구개발 재투자, 산업안전 투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있다. 정부는 노사 갈등이 격화될 때 중재자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원·하청 성과공유를 촉진하는 세제 인센티브, 상생기금 출연에 대한 평가제도, 협력업체 노동자 복지 개선을 위한 공시제도, 산업안전 공동책임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정거래 정책과 노동정책을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 납품단가·성과공유·고용안정·안전보건을 하나의 산업정책 패키지로 보아야 한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기업 공장이 위치한 지역에는 협력업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함께 살아간다. 이들의 임금과 고용 안정은 지역경제, 주거, 교육, 복지, 소비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방의회는 지역 내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상생협력 실태, 산업단지 노동환경, 하청 노동자의 안전·교통·주거 문제를 행정사무감사와 정책토론의 의제로 삼을 수 있다. 중앙정부와 대기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도 산업 생태계의 공정성을 점검해야 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도 이 문제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성경은 노동의 가치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일한 자가 그 수고의 열매를 누리는 것은 정의의 문제이며, 약자의 품삯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오늘의 산업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업의 성과가 커질수록 그 성과를 만든 사람들 가운데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누구인지 살피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적 책임이다. 사회법이 말하는 약자 보호와 성경이 말하는 이웃 사랑은 이 지점에서 만난다.


성과급 파업은 어느 순간 타결될 수 있다. 노사는 일정한 숫자에서 합의할 것이고, 시장은 다시 주가와 실적을 계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질문은 남는다. 이익은 누구의 것인가. 위험은 누구의 몫이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에 걸맞은 공정한 몫을 나누고 있는가.


대기업 정규직의 성과급 요구는 정당한 권리의 언어로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권리가 사회적 설득력을 가지려면 연대의 언어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업의 이익 배분도 마찬가지이다. 법적 최소 의무를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성과급 논쟁이 단순한 “더 달라”의 갈등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노사 대립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을 계기로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과 자본, 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공정한 몫을 다시 설계한다면, 오늘의 갈등은 한국형 노사상생 모델을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과급의 액수만이 아니다. 함께 일한 사람을 함께 기억하는 제도이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산업 생태계에서, 같은 위험을 감당한 노동자들이 명찰의 회사 이름 때문에 존중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 구조이다. 그것이 사회법이 지향하는 공정이고, 노사상생이 도달해야 할 품격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6.04.24 14:14 수정 2026.04.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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