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나 아닌 우리로

곽흥렬

담쟁이덩굴 가는 줄기가 오래된 돌담을 타고 오른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에 몸을 맡기고서 조심조심 길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가듯, 눈도 달리지 않은 담쟁이이지만 덩굴손을 뻗으며 한 발 한 발 위로 위로 느림보 걸음을 내딛는다. 

 

돌담은 담쟁이덩굴을 받쳐주고 담쟁이덩굴은 돌담을 지켜주며 더불어 살아간다. 그리하여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돌담이 없으면 담쟁이덩굴은 바로 서지 못하고, 담쟁이덩굴이 없으면 돌담은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 사는 세상사도 어쩌면 이 돌담과 담쟁이덩굴의 관계 맺음 같은 것이 아닐까. 굳이 사회적 동물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든 혼자서는 생을 영위해 나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일 터이다. 농사짓는 사람은 농작물 생산으로, 공장 사장은 물건 만드는 일로, 슈퍼마켓 주인은 상품 판매로 제각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세상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일 게다.

 

흔히들 우리 인간을 일러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인간만큼 불완전한 존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사자처럼 날카로운 발톱도 갖지 못했고, 박쥐처럼 예민한 청각 기능도 타고나지 못했다. 새처럼 창공을 자유자재로 비행할 날개도 없으며, 물고기같이 바닷속을 마음대로 유영하는 부레도 달려 있지 않다. 그런데도 그 알량한 머리 하나 믿고 마치 전능한 존재인 양 거들먹거리며 방정을 떤다. 

흔히들 많이 가진 이들은 제 스스로 잘나서 그리 되었다고 우쭐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오만함에서 나오는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이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에게 돈벌이 상대가 되어 줄 것인가.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헤아려 보면, 자신이 가진 재물은 이웃으로부터 빌린 것이며 자신이 누리는 여유로움은 이웃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의사는 환자가, 변호사는 의뢰인이, 기업가는 소비자가 있기에 그리 될 수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따지고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인 셈이다. 

 

꼭 이와 같은 수직적 관계에서만 도움을 주고받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의 수평적 관계에서도 그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동병상련 같은 감정이어서일까, 오히려 그런 사이일수록 서로를 향한 마음은 더욱 애틋하다. 

 

한때의 잘못으로 죄를 짓고서 영어의 몸이 되어 있는 음지의 사람들이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는 소식이 들린다.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이 육신의 병을 앓는 이들을 끌어안고 보듬어 준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육신의 병을 앓는 이들은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에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처럼, 사람은 모름지기 이웃과 함께할 때 더욱 행복할 수 있다. 요사이 흔히들 하는 말로 ‘더불어 살아가기’다.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고향인 경북 봉화의 오지마을에서 홀로 땅을 일구고 나무를 지키면서 살았던 전우익全遇翊 선생의 수필집이 우리의 메마른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는 평생을 더불어 삶의 참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한 포기 들풀처럼 지내다 떠난 분이다. 농사짓는 이야기를 통해 대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 자연에 순응하면서 안분지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참다운 인생이라는 선생의 삶의 철학이 편 편마다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제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높고 인물이 잘났다 한들 독불장군으로 지낼 순 없는 노릇이다. 황금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해도 그것으로 고픈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한자의 사람 ‘인人 자’가 지닌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나의 기쁨이 남의 기쁨이고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 사회, 나의 슬픔이 남의 슬픔이고 남의 슬픔이 나의 슬픔인 사회, 그런 사회가 진정 아름답고 건강한 세상이 아닐까. 나 아닌 우리로 살아가야 할 이유는 이로써 충분할 성싶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5.12.02 11:23 수정 2025.12.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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